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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잠동 위치안내

학하동 (鶴下洞, Hakha-dong)

학하동은 들이 많은 지역이다.서북쪽이 산지이고 북쪽과 동쪽에 비교적 큰 냇물이 흘러 땅이 기름졌으므로 천석지지로 알려진 곳이다.이처럼 학하동은 여기저기 산경에 의해 마을이 나누어지는 농경지대였으며, 별봉, 달봉같은 이름난 산도 있지만 지금은 산 1번지에서 산 5번지로 이어지는 서남쪽의 일부지역만 산지지역으로, 병화(兵火)가 들어오지 못하는 지역이라고 칭찬했던 옛사람들의 진언도 허물어질 만큼 많이 변화하고 있다.
1700년대를 전후해서 1800년대까지 성리학에 따른 학문의 마을로 유명했다.지형이 학이 내려앉은 형국이라 하여 학하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성전리, 용계리, 계산리의 각 일부와 공주군 현내면 서성동 일부를 병합하여 학하리라 정하였다.

용계동 (龍溪洞, Yonggye-dong)

용계동은 유성구의 남쪽에 위치해서 비교적 들이 넓은 지역이다.서쪽으로는 멀리 도덕봉과 빈계산 금수봉등 높은 산을 중심으로 산령을 이루고 있으나, 남쪽과 동쪽으로는 낮은 산악지대를 이루며 그 사이사이와 중앙지대를 중심으로 넓은 들을 조성한다.그래서 전답이 많으며 옛부터 농업에 따른 생산지대로 꼽히는 지역이다.서북쪽의 답지는 경지정리가 눈부시다.원내동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가는 진잠천이 교촌동, 대정동을 거쳐 용계동에 이르면 그 강줄기를 북동쪽으로 약간 꾸부리면서 들을 기름지게 하고 북쪽 학하동으로 들어간다.
용계동 뒷산의 모양이 용의 머리와 같으므로 용머리, 미리머리, 밀머리 또는 용계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에 따라 모곡리, 산직리의 각 일부, 공주군 현대면의 서성동 일부와 연암동을 병합하여 용계리라 정하였다.

계산동 (鷄山洞, Gyesan-dong)

계산동은 크게 나누어 서쪽은 산악지대이고 동쪽은 들과 비교적 낮은 야산지대로 조성된 지역이다.해발 415m의 빈계산 아래로 광활한 들이 펼쳐지며 들사이로는 서쪽의 산악지대에서 발원하여 동쪽 또는 동남쪽으로 흘러가는 크고 작은 냇물이 수없이 흐르고 있어 기름진 땅으로 유명한 곳이 계산동이다.
전해오는 구전에 의하면 계산동 멀리 서쪽에 서있는 도덕봉, 백운봉, 관암봉과 금수봉, 빈계산을 합하여 흑룡산이라고 부른다 한다.흑룡산은 계룡산의 외곽산으로서 계룡산은 천제의 성지이고, 흑룡산은 그 천제를 지키는 성지이며, 그 아래 들은 흑룡의 요람지라 한다.그래서 이 지역에는 처음부터 병화(兵火)는 들어오지 못한다 한다.그러므로 이미 선사시대에 마한의 부락사회국가인 「신흔국」이 들어선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것이다.
고려시대에는 도요지로서 청자를 생산했으며, 그 후 분청사기, 백자에 이어 1900년대에 이르러서는 막그릇을 구어 유성장터나 진잠장터에서 서민들의 그릇을 충당했다.빈계산 아래에 있다 하여 계산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모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계산리라 정하였다.

대정동 (大井洞, Daejeong-dong)

대정동의 서쪽은 산악지대이고 동북쪽으로는 낮은 야산지대가 점경을 이루고 있으나, 남쪽으로는 들이 넓어서 대체로 들이 많은 지역이다.대정동의 서북쪽으로는 아름다운 금수봉이 우뚝 서 있고 그 동북쪽에 자리한 빈계산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는 산령의 줄기가 산장산으로 이어진다. 대정동의 중앙에는 남쪽 원내동에서 발원한 진잠천이 비교적 넓은 강폭을 이루며 북쪽으로 흘러간다.서쪽으로는 1973년 11월 13일 개통한 호남고속도로가 있다.
대정동에 인류가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선사시대인 청동기시대부터인 것 같다.수렵시대부터 농경시대로 접어드는 청동기시대에 마한의 54개 부락사회국가의 하나인 「신흔국」에 자리하였던 인류가 서쪽으로는 대정동, 원내동으로 펼쳐 나가며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동쪽으로는 상대동에 고을을 형성하였다는 설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주암리와 용두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대정이라고 부르던 큰 우물의 옛 이름을 따서 대정리라 정하였다.

성북동 (城北洞, Seongbuk-dong)

성북동은 온통 산의 숲으로 가려진 지역이다.계룡산의 맥이 동쪽으로 이어지는 줄기에 서북쪽으로 해발 535m의 백운봉, 북쪽으로 해발 532m의 금수봉, 동북쪽으로 해발 415m의 빈계산이 조금 떨어져서 우뚝 서 있다.동쪽과 서쪽의 산 줄기 사이로 흐르는 금곡천은 계곡을 수놓은 듯 보기 좋은 산경을 조명하면서 남동쪽으로 흘러 산악지대에 자리한 성북동 사람들에게 기름진 땅을 만들어 준다.삼국시대 진현현의 고을 바깥쪽에 있으므로 성밖으로 불리던 성북동은 동쪽에 성북산성이 있어 더욱 유명하다.
조선시대 말기 성재 뒤에 있으므로 잣뒤, 잣디, 또는 성북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상성북리, 하성북리, 신천리 일부를 병합하여 성북리라 정하였다.
방동저수지 북쪽으로 성북동 삼림욕장이 1996년에 문을 열면서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전원생활의 멋을 품게 하기도 하는 성북동은 삼림마을이라는 뜻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교촌동 (校村洞, Gyochon-dong)

교촌동은 유성구의 남쪽에 위치해서 서쪽으로는 산악지대이나 동쪽으로는 비교적 넓은 들이 펼쳐진 지역에 자리한다.교촌동의 멀리 서북쪽에는 대전광역시와 공주시가 경계를 나누는 해발 533m의 도덕봉과 그 아래쪽에 해발 535m의 백운봉이 우뚝 서고, 해발 531m의 수려한 금수봉과 그 동북쪽에 위치한 해발 414m의 빈계산이 주축으로 동남쪽에 위치한다.
교촌동의 서쪽에는 해발 285m의 산장산이 산령을 이루고 남쪽으로 흘러가서는 원내동의 서쪽 일각을 차지한다. 백제때 진현현의 고을이 있었던 산장산의 일각인 북쪽에 위치해 있는 셈이다.교촌동의 동쪽으로는 원내동의 남쪽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부터 진잠천이 흘러와 서쪽의 산악지대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냇물을 합하고 북쪽으로 흘러가면서 주변에 비교적 넓은 들을 조성하는데 이 들이 교촌동 사람들의 삶의 텃밭이었다.
조선시대 초기에 진잠향교가 이곳에 자리하면서 교촌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진잠현의 학문이 여기 강당에서부터 비롯되면서 진잠지역 유생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 칠성리, 석천리, 용촌리, 용두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교촌리라 정하였다.

원내동 (元內洞, Wonnae-dong)

원내동은 이미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정착하기 시작한 지역이며 백재때부터는 진현현, 진령현, 진잠현, 진잠군의 고을로 근 1세기동안 이 지역의 중심지였던 곳이다.서북쪽으로는 계룡산에서 맥이 이어지는 백운봉에 이어 금수봉에서 산이 낮아지며 이 고장의 진산인 해발 285m의 산장산이 길게 늘어지고, 남쪽으로는 옥녀봉을 주산으로 아래 위로 산의 맥이 이어져 있으며, 동북쪽으로는 비교적 평탄한 들에 진잠천이 발원되어 흐르는 아늑한 둘레에 원내동은 자리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 송촌리, 교촌리, 석천리, 대정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내동리라 정하였다.
1983년 2월 1일 대전시 중구로 편입시 원래 내동이었다 하여 원내동으로 고쳐졌다.

세동 (細洞, Se-dong)

유성구의 서남쪽에 위치해서 전반적으로 산악이 점유하고 있는 지역이다.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가는골내가 전답을 기름지게 한다지만 들이 매우 좁다.거주지로서 이렇듯 취악한 지역에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여 근 1000년의 역사가 숨쉬워 가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세동의 지석묘가 이 고장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고려시대 말기부터 마을의 형성이 뚜렷해졌으며, 조선시대 중기에 접어들면서 세동의 위쪽에 위가는골, 아래쪽에 가운데가는골등 마을이 크게 들어섰다.여기 산악지대에 자리잡은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넓히기 위해 북쪽으로 그 높은 백운봉을 넘어 다니는 백운이 고갯길을 냈으며, 동쪽으로 홀목재를, 서쪽으로 신도안으로 넘어 다니는 고개를 내어 억척같이 삶의 터전을 넓혔었다. 그래서 가는골 사람들은 예로부터 생활력이 강한 사람들로 소문났었다.
조선시대에는 길고 가는 골짜기에 있으므로 가는골 또는 간은동, 세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에 따라 상세동, 중세동을 병합하여 세동리라 정하였다.1970년후에는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는 바람을 타고 세동도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였다.

송정동 (松亭洞, Songjeong-dong)

대전광역시 서남쪽의 첨단지역에 위치해서 북쪽으로는 산악지대이고 남쪽으로는 들이 조성된 지역이다.북쪽으로는 계룡산 국립공원에 속한 해발 525m의 관암산을 주봉으로 그 아래 시로봉, 그 아래에 조개봉이 육중한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조개봉에서 서서히 낮아지는 산줄기가 송정동의 동쪽에서 급강하하며 그 아래로 들을 조성하지만, 송정동의 서남쪽으로는 선창가에 몰려오는 잔잔한 파도처럼 산이 낮아지면서 비교적 넓은 들을 조성한다.남쪽으로는 계룡산 신도안에서 발원하여 흘러오는 신도안내가 송정동의 들로 흘러와 밭보다는 논이 월등하게 넓다.선사시대의 유물인 돌살촉과 버들잎숟가락이 동남쪽 선창지역에서 발견되고, 서쪽의 벌말에서도 같은 시기의 토기등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지금으로부터 1만년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 말기 소나무가 정자처럼 서 있으므로 소정이 또는 송정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선창리와 연산군 두마면 광수리, 동서암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송정리라 정하였다.

방동 (芳洞, Bang-dong)

유성구의 최남단에 위치해서 비교적 낮은 산악지대와 들로 조성된 지역이다.조선시대 초기 진잠현에 속했다가 조선시대 말기에는 진잠군 서면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방과 같으므로 방골 또는 방동이라 하였다.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 하세동, 하성, 북리, 신천리의 각 일부와 상남면의 금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방동리라 하고 대전군 진잠면에 편입되었다.
방동 동쪽에 남북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방동저수지가 있다.북쪽 백운봉과 빈계산을 발원지로 하여 남쪽으로 흐르는 금곡천(쇠골내)의 냇물을 남쪽에서 막고 조성한 저수지이다.1977년에 완공되었으며, 제방아래로 호남고속도로가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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