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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신흥동 위치안내

원신흥동 (元新興洞, Wonsinheung-dong)

유성구의 동쪽에 위치해서 중앙에 낮은 산지가 조성되었을 뿐 사방이 들과 야산지대로 덮여있는 비교적 들이 많은 지역이다.서쪽과 동쪽에 냇물이 흐르고 있어서 모래가 많은 지역으로, 들도 대개가 모래로 덮여 있다. 원신흥동의 동쪽을 흐르는 갑천은 참으로 수려한 강이다. 옛 명인들이 갑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땅을 조성하여 흐르는 강이라고 지적하였는데, 그 갑천의 흐름이 원신흥동의 동쪽에 이르러서는 더욱 빼어난 것 같다. 조선시대 말기에 벌판에 새로 이룩한 마을이므로 신흥이라 하였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문산리, 덕락동, 서성동, 양지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신흥리라 불렀다. 그 후 1989년 1월 1일 대전시가 직할시로 승격함에 따라 대전직할시 유성구에 편입되었는데, 원래가 신흥동이라 하여 원신흥동이라 정하였다.원신흥동에 사창이 있을 때 부르던 민요로 다음과 같은 노래가 있다.

문산에서 문을 열고 나와

덜레기에서 덜렁덜렁 걸어가서

음짓벌에서 음칫 쳐다보니

도안에서 편안하게 쉬더라

상대동 (上垈洞, Sangdae-dong)

선사시대에 부락사회국가가 있었던 서남쪽 빈계산의 영향을 받아 인류의 이동이 확산되며 농업사회로 전환하는 시기에 삼국시대로 접어들면서 이 지역의 고을 노사지현으로 등장하게 된 상대동은 당시의 유성지역에서는 가장 발달한 곳으로 지목할 수 있다. 서쪽으로는 산악지대이나 그리 높은 산은 없으며 해발 200m의 둥둥봉이 가장 높은 산인 것 같다. 남쪽에는 서남쪽에서 흘러오는 건천이 북쪽으로 흘러가면서 많은 토사를 흘러오게 하고 기존의 흙을 걸러서 모래사장을 조성하고 서쪽에서 차츰 낮아지면서 평평한 땅을 조성하는 산의 낙맥이 띄엄띄엄 돌출한 바위처럼 서 있으나 모두가 야산지대에 속하고 그 아래 들이 있어 전답의 면적이 임야의 면적보다 월등하게 많은 관계로 옛부터 상대동에는 큰 부자는 없어도 굶는 사람도 없다 하였다. 조선시대에 유성현의 고을이 있었던 지역이므로 위터 즉, 상대라 부르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용촌리, 산소리, 중흥리, 양지리, 상원동, 서성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상대리라 정하였다.

봉명동 (鳳鳴洞, Bongmyeong-dong)

유성구의 동쪽에 위치하며, 유성온천의 온천탕이 밀집해 있어서 사실상 유성 관광특구의 핵심을 이루는 지역이다.봉명동에 들어서서 흐르는 냇물은 모두가 북쪽을 향해서 흘러간다. 그 북행하는 갑천, 건천, 유성천의 완충지대에 뜨거운 온천물이 솟는 온천지대가 있다. 냉천의 벽 속에 온천수가 솟는 것이다. 봉명동의 서쪽으로는 왕가봉을 비롯한 비교적 낮은 산악지대와 야산지대가 멀리 자리하고 있으나 그 산악지대에서 동쪽으로 펼쳐지는 들에 봉명동이 자리하고 있어서 사실상 봉명동에는 산이 없고 완전한 들로 조성되어 있다. 1900 년대로 들어서기 전에는 숲으로 둘러 쌓인 지역이었다. 북쪽으로는 더욱 숲이 깊어서 부엉이가 밤이 되면 떠나지 않고 운다 해서 봉명동이라고 불렀다는 사실도 믿기 어려울 만큼 지금은 완전한 변화의 거리를 조성한 곳이 봉명동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에 낙동, 어은동, 궁동리의 각 일부와 공주군 현내면의 신흥리, 장대리, 상대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봉명리라 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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