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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2동 위치안내

지족동 일부(智足洞, Jijok-dong)

지족동의 서북쪽으로는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해발 573m의 우산봉이 우뚝 서고 서남쪽으로는 그 맥의 줄기를 받아 해발 469m의 갑하산이 있으며 그 사이 준령이 마치 높은 산악지대의 능선처럼 가린 동쪽으로 아담한 전원을 이루고 있는 곳이 지족동이다. 옛부터 지족동은 두메 골짜기에 있으므로 지족실이라 불렀다 한다. 그 지족실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세미레같은 세미에서 발원한 냇가에 마을이 있었으며 남쪽으로는 대나무 마을 죽궁이 그리고 들판인 창말이 있어, 골짜기 마을과 냇가의 마을인 들말등이 하나가 되어 빼어난 전원을 이루었다. 이렇듯 소라실, 공사실, 지족실의 산형에 의해 지족동에는 삼실(三室)이 있다는 도참설도 전해져 온다. 조선시대 말기 두메 골짜기에 있으므로 지족실 또는 지족동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 광덕리와 송곡리, 신촌리, 공사동, 은동, 갈마동, 죽곡리, 소읍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지족리라 하고 대전군 유성면에 편입되었다.지족동은 행정구역상 노은1동, 노은2동으로 나누어져 있으니, 전입신고시 해당동에 문의 후 신고하시기 바랍니다.

반석동 (盤石洞, Banseok-dong)

얼마되지 않은 들이지만 산악지대에서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이 많았기 때문에 들의 전답이 비옥하여 옛부터 유성지역중 좋은 쌀을 생산하는 지역으로서, 인심좋고 경제가 여유있다는 삼미천(三美川)의 한 지역으로 널리 알려졌던 곳이다.조선시대 초기 공주군 탄동면의 지역으로서, 주변에 바위가 많았는데 특히 반석(盤石)이 많으므로 반석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회병리, 금성리, 삼계리, 우미동, 외삼동 일부를 병합하여 반석리라 하고 대전군 탄동면에 편입되었다.

외삼동 (外三洞, Oesam-dong)

역사적으로 가장 풍류를 생각하고 멋을 풍겼던 조선시대에 선비들이 살아보기를 원하고 노래하던 기름진 들이 있어 삼미천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물이 좋고, 쌀이 좋고, 인심이 좋다하여 열두 세미래라고 부른다는 삼미천은 공주 갑사의 열두 대장골과 쌍벽을 나누는 충청도의 명당지라 한다. 조선시대 초기에 공주군 탄동면의 지역으로서 세미래 바깥쪽이 되므로 바깥세미래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혁에 따라 산막리와 공주군 반포면의 동촌리 일부를 병합하여 외삼리라 하고 대전군 탄동면에 편입되었다.1220년 이전에는 오지로서 완전한 농촌지대였던 외삼동에 1920년대 후반기부터 도로가 뚫리면서 새로운 문화의 바람이 서서히 불어오기 시작하였다.

안산동 (案山洞, Ansan-dong)

조선시대 초기에 공주군 반포면과 탄동면의 지역이었다. 길마재에 마을이 있으므로 길마재 또는 안산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 공주군 반포면의 동촌리, 어득운리의 각 일부와 탄동면 길마재 부근을 병합하여 안산리라 하고 대전군 탄동면에 편입되었다. 백제때 안산산성이 있어 백제를 지키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1950년 7월 13일에는 6·25동란때 공산군과 대치하던 UN군이 대평리 교두보가 무너지면서 후퇴하게 될 때에 야간을 틈타 후방인 안산교 서쪽, 동쪽에 매복해 있던 공산군의 습격을 받아 UN군이 치명적인 전투를 치러야 했던 곳이기도 하다.

수남동 (水南洞, Sunam-dong)

조선시대 초기 공주군 반포면의 지역으로, 마을 뒤쪽으로 높은 금병산이 둘러 있고 물이 남쪽으로 흘러 무나미, 무남리 또는 수남(水南)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 봉성동과 명탄면의 박산리를 병합하여 수남리라 하고 대전군 탄동면에 편입되었다. 조선시대의 수남 마을은 금병산이 영산으로 유명했지만 무나미 북쪽의 새재도 유명한 산이었다. 계룡산의 산새나 금강변을 날으는 물새들의 보금자리가 새재였다 한다. 꾀꼬리, 부엉이, 까마귀, 까치, 참새, 멧새, 황새, 뜸부기까지 없는 새가 없다 하여 새재라고 부르기보다는 조성(鳥城)이라고 많이 불렀다.그래서 새소리가 가장 시끄러운 아침이나 저녁에는 사람들이 귀를 막고 새재아래를 지나갔다 한다. 옛날 선비들이 세상이 시끄러울 때는 새재 동쪽에 있는 수양산, 금병산을 찾지만 세상이 조용할 때는 시끄러운 새재를 찾았다 한다.

하기동 일부(下基洞, Hagi-dong)

조선시대 초기에 공주군 탄동면에 속하여 원내 텃골 아래쪽에 있으므로 아래텃골이라 부르던 곳이 그 유지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송림리, 봉기리, 상기리를 병합하여 하기리라 하고 대전군 탄동면에 편입되었다.현재 관할 행정동이 노은2동과 신성동으로 나뉘어져 있다. 조선시대에 한 장자가 이 곳에 터를 잡고 살았는데 텃세를 단단히 하여 외지사람들이나 이 곳에 사는 사람들도 그의 땅은 밟지도 못하고 얼씬도 못하였다 한다. 그의 텃세가 대단했던 곳의 마을이라 하여 텃골이라 불러오고 있다. 위텃골과 아래텃골로 나뉘어져 있으며, 아래텃골이 있는 쪽으로 1973년 11월 14일 개통한 호남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한화 대전공장과 경계이기도 하다. 하기동은 행정구역상 노은2동, 신성동으로 나누어져 있으니,전입신고시 해당동에 문의 후 신고하시기 바랍니다.

죽동 일부(竹洞, juk-dong)

우산봉 아래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지족천이 죽동의 서쪽에서 강폭이 넓어지면서 들을 기름진 옥토로 만들어, 여기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손꼽을 만한 부자도 대밭에 있었으며 사람들이 여유만만하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조선시대에 공주군 현내면 지역으로서 대나무가 우거진 마을이므로 대울 또는 죽동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혁때 대야동, 저평리, 지동, 갈마동 일부를 병합하여 죽동리라 하고 대전군 유성면에 편입되었다. 죽동은 행정구역상 온천2동, 노은1동, 노은2동으로 나누어져 있으니, 전입신고시 해당동에 문의 후 신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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