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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소개

유성온천 소개

    온천은 화산대의 지열로 지하수가 가열되어 분출하는 샘을 말하는 것으로 예부터 으뜸가는 지역자원으로 이용되어 왔다. 유성의 온천수는 50-400m로 구성된 화강암 단층 파쇄대에서 생성된 물로써 지하 200m 이하에서 분출되는 27~56℃의 고온열천이다. 또 유성온천은 약 60여 종의 각종 성분과 동양 최대의 라듐을 함유하고 있고, 중금속도 전혀 검출되지 않는 양질의 온천으로 명성을 지니고 있다.

    유성 온천의 역사

    유성온천에 대한 기록을 보면 백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본래 백제 노사지현이다. 신라 경덕왕 때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고 비풍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에서도 옛 이름으로 하고 내속했다. 온천이 있다” (고려사 권56, 지리1)
    그리고 주목할 만한 기록은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이 유성온천으로 행차하여 목욕하고 제사를 지낸 기록이다.
    “충청도 유성온정에 거동하니, 세자가 백관을 거느리고 돈화문 밖에서 지송하였다. 임금이 “구릉의 갱감에는 모두 신이 있으니, 의당 날마다 제사를 지내야 하겠다”하고, 시녀 상기 8인이 수가하여 매일 먼동이 트는 이른 새벽에 명산대천에 제사지냈다. (세종실록 태종13년 9.11)

    온천

    이후 유성온천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 공주 갑부 김갑순이 땅을 사들여 개발한 후, 다음 해 12월 문을 열었고, 1922년 주식회사로 상장, 대전온천주식회사로 발전시켰다.
    1923년 남만주철도에서 유성온천 일부를 인수하여 본격적인 경영에 뛰어들었는데 철도여행객을 유성온천으로 끌어들였고, 1924년 유성온천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꿔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1927년 유성온천에 오락장까지 신축되면서 유성온천의 번영에 가속도를 더했다.
    (『근대사진엽서로 보는 100년전 대전』대전광역시, 2011)

    유성호텗

    호텔

    1958년 현재 호텔리베라의 전신인 만년장이 문을 열었으며, 1966년 유성지역 최초의 관광호텔인 유성관광호텔이 문을 열었다.
    이후 1970년대 들어 이곳이 본격적으로 개발되어 현재는 모두 13개의 관광호텔과 2백여개의 숙박시설이 있으며 연간 2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과 목욕객이 다녀간다.
    온천업소가 있는 봉명동 온천지구는 934,045㎡(282,550평)이다.

    유성구온천수이용현황수정(20140211)

유성온천의 주성분

유성온천의 주성분
성 분 함량 (ppm) 성 분 함량 (ppm)
K(㎎/ℓ)
칼륨
1.3 Pb(㎎/ℓ)
0
Na(㎎/ℓ)
나트륨
69.8 Zn(㎎/ℓ)
아연
0.01
Ca(㎎/ℓ)
칼슘
9.3

T-soilds(㎎/ℓ)

총고형물질(광물질량)

238
Mg(㎎/ℓ)
마그네슘
0.1 pH(㎎/ℓ)
수소이온농도
8.5
C1(㎎/ℓ)
염소
24.1 EC(㎕/㎝)
전기전도도
331
SO4(㎎/ℓ)
사산화황
24 HCO3(㎎/ℓ)
탄산수소
106.4
F(㎎/ℓ)
플로오트
4.1 CO3(㎎/ℓ)
탄산
1.9
SiO2 이산화규소 47.5 CO2(㎎/ℓ)
이산화탄소
0.5
Li(㎎/ℓ)
리튬
0.15 Mn(㎎/ℓ)
망간
0
Sr(㎎/ℓ)
스트론듐
0.03 Cu(㎎/ℓ)
구리
0
Fe(㎎/ℓ)
0    

유성온천수의 부존 및 이용현황

유성온천수의 부존 및 이용현황
온천지구
(km²)
온천수부존량
(천m³)
적정 채수량
(천m³/년)
이용 허가량
(m³/일)
이용시설현황
숙박 목욕 기타
(의료)
0.938 24,000 3,900 10,751 65 54 7 4

유성온천의 유래

    온천

    옛날 백제 때 일이다. 문화를 사랑하고 백성들이 편안히 살기를 원했던 백제땅에 의자왕 때부터 먹구름이 돌기 시작했다. 의자왕의 아버지 무왕 때만 하여도 진터벌에 진을 쳤던 백제군은 군율이 엄해서 곧잘 침범해 오는 신라군을 쫓아 신라땅 깊숙히 쳐들어가기도 하였지만, 의자왕 때의 군사들은 끄떡하면 성을 비우는 일이 다반사고 군율이 흐트러져 있었다.

     

    이 때를 노린듯 신라군들은 차츰 백제땅을 침범하는 횟수가 늘어났고 백제땅의 젊은이들은 모두 군사로 뽑혀가게 되었다. 유성땅에 살고 있던 한 어머니도 아들 하나만 믿고 살고 있었으나, 아들이 군문에 뽑혀 들어가게 되어 걱정이 태산 같았다. 아들이 벌어서 그날 그날 생계를 이어오던 이 집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어려운 싸움이라 하더라도 외아들까지 끌어가다니 하고 어머니는 여기저기에 호소하여 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드디어 아들은 군문에 끌려가게 되었다. 지금 떠나면 어머니를 영영 보지 못할 것 같아 그는 그동안 열심히 벌어 모은 돈을 어머니 머리맡에 가만히 놔두고 새벽에 집을 떠났다. 어머니가 잠든 사이에 집을 떠난 그는 곧장 군문에 들어갔고, 그의 어머니는 잠에서 깨어나 아들이 없는 것을 보고 그날부터 시름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어머니는 슬퍼하며 울기보다는 아들을 위해 기도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고목나무에 물을 떠 놓고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었다. 아들은 더욱 격렬해지는 싸움터에서 그래도 용감하게 싸웠다.
    밀려오고 또 밀려오는 적과 매일 같이 싸우다가 그는 어느날 갑자기 날아오는 화살에 맞고 쓰러졌다. 그가 쓰러진 자리에는 한참만에 신라군의 발자욱 소리가 들려왔고, 성은 신라군에게 점령당하고 말았다.
    그는 화살에 맞은 채 누워 있었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는 신라군에 붙잡혀서 포로가 되었고 신라군들이 쌓는 성터로 가서 돌을 나르는 일에 종사하게 되었다. 그는 돼지보다 천한 대접과 매를 맞으면서 돌성을 쌓았다.

     

    어머니는 싸움은 끝났는데 자식이 돌아오지 않자, 항상 사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다가 그만 병이 들어 눕게 되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누워 있는데 꿈속에 아들이 마을 앞 들판을 기어오는 꿈을 꾸었다.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서 사립문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그때 자기의 눈앞에 쓰러지면서 이쪽으로 기어오는 사람을 발견하고 맨발로 달려갔다. 가까이 갈수록 아들임에 틀림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 이 름을 부르면서 달려갔다. 거기엔 아들이 온 몸에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었다. 신라군의 성을 쌓는데서 모진 매를 맞으며 일을 하다가 죽기를 각오하고 도망쳐 나온 것이었다. 그는 집에 와서 병치료를 하게 되었다.

     

    몸은 다친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으며 그는 혼수 상태에서 헤매게 되었다. 어머니는 좋은 약이란 약은 모두 구해다가 써 봤지만 효력이 없었다. 그래도 자식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른 아침에 약을 구하러 집을 나섰다. 집앞을 지나 논길을 걷는데 다친 학 한마리가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고통스럽게 울고 있었다.

     

    어머니는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떨어진 학 곁에 가보니 학이 떨어진 자리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고 있다. 학이 떨어져서 뜨거운 물에 몸을 비비고 있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자기 아들을 생각했다. 학은 뜨거운 물로 한쪽 날개를 자꾸 적시더니 파닥거리다가 하늘로 날아갔다. 그의 어머니는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물동이를 이고 뜨거운 물을 떠서 그것을 이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들에게 그 물로 목욕을 시켰다. 아들의 상처를 따뜻한 물로 씻기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눈만 감고 누워 있었다. 그러기를 며칠, 이상하게도 바깥 상처에 딱정이가 지기 시작했고, 저절로 딱지가 떨어지더니 언제 앓았느냐는 듯이 홀가분하게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후 그의 어머니는 뜨거운 물이 나오는 곳에 움막을 짓고 여러가지 병을 앓는 사람을 여기에 와서 목욕을 하도록 했고, 여기 물로 목욕을 한 사람중에서 병을 고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으므로, 여기 유성 땅 뜨거운 물이 나오는 곳은 팔도강산 구석구석까지 알려져서 찾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바로 이 유래에서 나오는 학을 형상화하여 높이 7m의 대리석으로 온천탑 “임선빈작 『학의 자리』”을 건립하여, 1989년 9월 제1회 유성 온천문화제의 개막식과 함께 제막식을 가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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