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동에서 교촌동을 지나 산길을 따라 성북동 윗잣뒤 동네쪽으로 넘어가다 보면 성재고개의 남쪽에 산성의 흔적이 나타난다. 이산성이 성북산성이다.
표고 230m에 위치한 이산성의 형태는 테뫼식이다. 돌로 쌓은 이산성의 둘레는 약 450m 정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석축은 무너져 원형을 찾아보기 힘들며, 북벽의 일부가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을 뿐이다. 문지는 동북벽의 모퉁이에 위치하여 산의 정상으로 오를 수 있는 곳과 그리고 북벽의 중간에 위치한 곳이 있다. 동벽과 남벽은 모두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면서 삭토의 방법으로 조성하였으나 지금은 확인하기 힘들정도로 파괴되었다. 성안에서는 격자무늬, 파상무늬등을 새겨 넣은 경질토기와 기와 파편등이 수습되고 있다.
이성은 7세기 전까지는 두량이성, 주류성, 지라성, 두릉윤성으로 불리우며, 백제의 중요한 산성중의 하나였었다는 학설이 있으나 정확하지 않다. 또 15-16세기에 와서는 『산장산성』으로 불리워졌고, 오늘날에 이부근을 『산정이재』, 『성재』로 부르고 있다.
성북산성은 규모, 출토유물, 인문지리적 조건으로 보아 백제의 중요한 산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전과 부여지역을 잇는 주요 교통로의 인근에 위치해 있어 대전동부지역의 다른산성과도 중요한 연계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어느때 부터인지 성안에 분묘가 하나 둘씩 생겨나 산성을 훼손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아예 무연고자들의 공동묘지로 사용했다. 이는 허술한 상태로 방치되어 온데다가 산성의 역사적 가치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데서 비롯됐다. 때문에 산성 곳곳이 파괴돼 원형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