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1394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도읍지를 물색하기 위해 계룡산 신도안으로 가던 중 유성 온천에서 목욕을 했다고 전해지며, 조선 태종 이방원도 왕자이던 1393년, 유성온천에서 목욕을 한 뒤 병사들이 군사훈련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는 기록으로 짐작 하건데 유성온천은 임금이 쉬어 갈 정도로 훌륭한 온천임을 짐작할 수 있다.
태종이 충청도 유성 온정으로 출발하다. [태종실록] 26권, 13년 9월 11일(정해)
유성현 독기울이라는 지역에 온천 시설이 있다.[세종실록지리지] 충청도 공주목 온천(溫泉)
유성에 온정이 있다고 확인하다. [세조실록] 45권, 14년 3월 6일(병인)
상당부원군 한명회가 공주의 온정에 목욕하러 가다. [성종실록] 200권, 18년 2월 20일(경인)
유성 온천에서 태조와 태종이 목욕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17권, 충청도 공주목 산천조
청풍부원군 김우명이 공주에 온천 하러 오다.
홍우원(洪宇遠, 1605~1687) [남파집(南坡集)] 권10 [사공주목사장(辭公州牧使狀)]
일제강점기인 1912년 공주 갑부 김갑순이 땅을 사들여 개발한 후 12월 유성온천이 문을 열었다.
유성온천이 주식회사로 상장하며 대전온천주식회사로 발전하였다.
남만주철도에서 유성온천 일부를 인수하여 본격적인 경영에 뛰어들게 된다.
유성온천이 주식회사로 상장하며 대전온천주식회사로 발전하였다.
유성온천에 오락장까지 신축되며 유성온천의 번영에 가속도가 더해진다.
호텔리베라의 전신인 만년장이 문을 연다.
유성지역 최초의 관광호텔인 유성관광호텔이 문을 연다.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개발이 이루어지며 현재는 모두 10개의 관광호텔과 2백여개의 숙박시설이 있다. 연간 2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과 목욕객이 다녀가며 온천업소가 있는 봉명동 온천지구는 938,854㎡(284,003평)이다.